죄를 사하시는 권세, 죄인을 부르시는 은혜
📖 마태복음 9:1–13
📘 서론 |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을 기대하며 나아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올 때에는
대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병이 낫기를 원해서 나아오기도 하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나아오기도 하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그가 다시 걷게 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도 분명한 필요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한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병보다 먼저
죄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올 때
무엇을 가장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장 먼저 주시려 하는가?
📖 본론 Ⅰ.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1–8절)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건너와
본 동네, 가버나움에 이르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운 채로 데리고 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같은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고쳐 주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병의 문제보다
더 깊은 문제를 보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몸의 마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
곧 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은
속으로 말합니다.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그들의 생각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가르침에 따르면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말로만 보면 죄 사함이 더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죄 사함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피 흘림의 대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인자이심을
분명히 증명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시기 전에,
죄를 사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받아야 할 은혜는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 본론 Ⅱ. 예수님은 외형이 아니라 믿음을 보신다 (2절)
2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상태를 보셨다고 하지 않고,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중풍병자는 스스로 예수님께 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를 침상째 들고,
힘들게 옮겨,
주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행동 속에서
믿음을 보셨습니다.
이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연약하지만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장면은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을 향해
“왜 못 일어나느냐”고 묻는 곳이 아니라,
함께 짐을 지고
주님께 데려가는 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조건보다
주님께 향한 믿음을 보십니다.
📖 본론 Ⅲ.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9–13절)
이제 장면은 바뀝니다.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마태를 보십니다.
세리는 당시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단 한마디로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마태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자격이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부르심이 자격을 만들어 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불편해합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이에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그리고 복음의 핵심을 선언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의로운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이
은혜로 모인 공동체입니다.
🔔 결론 |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묻습니다.
나는 지금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며 주님 앞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죄인임을 인정하며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까?
중풍병자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걷는 능력이 아니라
죄 사함의 은혜였고,
마태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직업이 아니라
새로운 부르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정죄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나를 따르라.”
이 은혜의 말씀 앞에 응답하며,
용서받은 죄인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기도제목
1️⃣ 죄 사함의 은혜를 바로 깨닫게 하소서
- 우리의 가장 깊은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죄의 문제임을 알게 하소서
-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진 구원자이심을 믿게 하소서
2️⃣ 자기 의를 내려놓고 은혜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며 주님 앞에 서지 않게 하시고
- 죄인임을 인정하며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믿음을 주소서
3️⃣ 연약한 자를 함께 주님께 데려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판단과 정죄보다 함께 짐을 지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 넘어지고 지친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게 하소서
4️⃣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 마태처럼 계산하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시고
-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따라가게 하소서
🙏 예배용 대표 기도문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죄를 사하시는 권세와
죄인을 부르시는 은혜를 다시 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종종 주님 앞에 나오면서도
우리의 필요와 문제만을 앞세웠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형편보다 더 깊은 문제,
곧 죄의 문제를 먼저 다루시는 분이심을
오늘 다시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의를 내려놓게 하시고,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지 않게 하시며,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붙들고
겸손히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중풍병자를 데리고 주님께 나아왔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연약한 이들을 판단하지 않고
함께 짐을 지고 주님께 데려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세리 마태를 부르셨던 그 음성이
오늘 우리에게도 들리게 하시고,
계산하거나 미루지 않고
“나를 따르라” 하시는 부르심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말씀 묵상 | 죄를 사하시는 주님 앞에 서다 (마태복음 9:1–13)
📖 본문 말씀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2)
✏️ 묵상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분명한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의 몸이 고침받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기대보다 더 깊은 곳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병보다 먼저 죄의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몸의 연약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위로이자 선언이며, 동시에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죄를 사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일으키심으로, 자신이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진 구원자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부르십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죄인으로만 보였던 마태에게 주님은 조건을 달지 않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은혜는 자격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죄인에게 먼저 임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문제 해결을 기대하며 서 있습니까, 아니면 죄인임을 인정하며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기도
죄를 사하시는 주님,
제 삶의 문제보다 제 죄를 먼저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자기 의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붙들게 하소서.
오늘도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적용 한 줄
오늘 하루, 내 의가 아니라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겠습니다.
🌱 오늘의 말씀 묵상 (마 9:1–13)
📖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사람들은 중풍병자가 걷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먼저 그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보다
더 깊은 죄의 문제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이십니다.
🙏
주님, 오늘도 제 문제보다
주님의 은혜를 먼저 붙들게 하소서.
👉 오늘의 적용
오늘 하루, 내 의가 아니라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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