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사실 지금도 헤매고 있지만(시편 119:161-176)

essay2598 2025. 5. 1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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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도 헤매고 있지만(시편 119:161-176)

 

🕊️ 서론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으로 산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늘 믿음으로만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때론 마음이 식고, 현실의 무게에 눌려 하나님의 말씀조차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상황은 정반대일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립니까?

시편 119편은 말씀에 대한 가장 긴 고백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 마지막 연(쉰)은 인생의 고난과 방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든 한 사람의 믿음 고백입니다. 그는 핍박 가운데서도 말씀을 경외했고, 방황하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사모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편 기자의 고백을 통해, 끝까지 말씀을 붙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방황을 멈추게 할 유일한 길임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지금 흔들리고 있다면, 이 말씀이 다시 일어서는 은혜의 손길이 되길 소망합니다.

 

📖 본론1 – 환난 중에도 말씀을 경외하는 믿음 (시 119:161-164)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161절)

신앙생활은 종종 예상하지 못한 시련과 마주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고관들”, 즉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까닭 없이” 핍박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도 명확하지 않고 억울한 고난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 경외함으로 붙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외하다’(히브리어 pāḥaḏ)는 단순한 존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과 권위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할 상황이지만, 그는 오직 말씀 앞에서만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의 중심입니다. 고난이 사람을 흔들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흔들 수 없습니다.

162절에서 그는 말씀을 큰 탈취물을 얻은 자같이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탈취물"은 전쟁의 전리품을 의미하며, 그만큼 말씀을 얻는 것이 목숨을 걸고 얻은 승리와 같은 기쁨이라는 고백입니다. 환경은 절망이지만, 말씀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역설적인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63절에서는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고 말합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세상의 거짓과 불의에 저항하며 진리에 설 수 있는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신자는 이 세상 속에서 늘 두 가치 사이에 서게 됩니다.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거짓된 위로나 타협이 아닌, 말씀의 진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164절에서는 하루에 일곱 번 주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합니다. ‘일곱 번’은 문자적인 숫자보다는 완전함과 지속적인 경건생활을 뜻합니다. 그의 삶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그 고난의 틈마다 찬양이 흐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말씀 안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고난을 없애주진 않지만, 그 고난을 지나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줍니다. 그리고 그 힘은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옵니다.

 

📖 본론2 – 말씀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믿음 (시 119:165-168)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5절)

시편 기자는 앞선 고난의 상황을 지나면서도 이제 말씀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고백합니다. 165절에서 말하는 “큰 평안”(샬롬)은 단지 고요한 마음 상태를 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누리는 전인격적 안정과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평안이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건이 좋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선언합니다. 상황은 여전히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우리의 마음을 지킵니다.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다”는 표현도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고난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장애물도 영적으로 자신을 넘어뜨릴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말씀 안에 있는 사람은 삶의 길이 울퉁불퉁해도, 영혼은 평탄한 길을 걷게 되는 은혜를 누립니다.

166절에서는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이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구체적인 순종을 동반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면서도 지금 현재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과 순종의 일치입니다. 말씀을 믿는 자는 반드시 그것을 삶으로 살아냅니다.

167절에서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라고 말할 때, 그는 단순히 순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존재적 애정을 고백합니다. 말씀은 단지 규칙이 아니라, 영혼이 사랑하고 붙드는 생명의 줄입니다.

168절에서는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라고 마무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 앞에서의 신자의 책임 있는 삶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시선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시선 아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이처럼, 시편 기자는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큰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신앙의 정상에 도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지 말씀을 ‘공부’하는 차원이 아니라, 말씀을 ‘살고 사랑하는’ 자리로 이끌려간 신앙의 깊이를 보게 됩니다.

 

📖 본론3 – 방황 속에서도 말씀을 갈망하는 믿음 (시 119:169-175)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69절)

시편 기자는 방황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의 기도는 단순한 도와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그는 “주의 말씀대로” 자신을 깨닫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주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170절에서는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라고 다시 고백합니다. 중요한 점은 그의 부르짖음이 말씀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받고, 말씀에 따라 구원을 구합니다. 이것이 말씀 중심의 기도, 말씀 중심의 삶입니다. 말씀은 단지 고난 속에서 위로받는 도구가 아니라, 그 고난을 건너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입니다.

171절과 172절은 감사와 찬양의 고백입니다.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시편 기자가 고난 속에서도 찬양을 멈추지 않았으며, 오히려 말씀을 통해 감사의 이유를 더 깊이 발견했음을 보여줍니다.
말씀이 가르쳐지는 곳에는 찬양이 흐릅니다. 말씀을 붙든 자는 결국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어 있습니다.

173절에서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그는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길을 택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개혁주의적 언약의 응답 구조, 즉 하나님이 먼저 주신 말씀에 대한 성도의 능동적 순종으로서 나타납니다.

174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이 있어도 말씀이 기쁨이 되고, 구원이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어도 그것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믿음,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성도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장차 올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며 현재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175절,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는 마치 영혼의 마지막 호흡 같은 기도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간절함, 그리고 말씀이 도와야 내가 찬송할 수 있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속에서 죽음이 아니라 말씀으로 다시 사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자신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뿐임을 고백합니다.

 

🙏 결론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시 119:176)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붙드는 사람의 고백으로 가득하지만, 마지막 절은 아주 낮고 겸손한 자리에서 끝맺습니다.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말씀을 그렇게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아온 사람조차 여전히 스스로를 ‘방황하는 양’이라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큰 위로입니다. 우리가 완벽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흔들리는 그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복음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 잃은 우리를 다시 찾으시고 인도하시는 목자의 음성입니다.

말씀은 단지 교훈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신 그 말씀처럼,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오셨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음성으로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혹시 마음이 흔들리고 계십니까?
삶의 방향을 잃고 계십니까?
오늘 시편 기자처럼 고백하십시오.
“주님, 제가 길 잃은 양입니다. 하지만 주의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고백이 회복의 시작이며,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이제 우리도 다시 그 말씀을 붙들고 일어납시다. 주의 손이 우리를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살고, 말씀을 따라 걷고, 말씀 속에 소망을 두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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