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날, 속량의 날(누가복음 21:20-28)
멸망의 날, 속량의 날(누가복음 21:20-28)
🟠 서론
어느 장로님 한 분이 조용히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섭습니다. 뉴스만 틀면 전쟁, 지진, 경제 위기 이야기가 나오고, 자식들은 신앙보다 생존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아마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그런 마음 드시는 분들 계실 겁니다.
사실, 예수님 당대에도 비슷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주님은 그 날이 올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심판의 날과 구원의 날을 함께 말씀하십니다. 한편에서는 무너짐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속량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도 분명히 임한다는 진리를 붙들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날을 향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함께 묵상해 보려 합니다.
🔵 본론 1: 무너지는 예루살렘 – 역사의 멸망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 21:20).
이 말씀은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전이 있는 거룩한 중심이었습니다.
그 예루살렘이 ‘멸망’한다는 건, 곧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뜻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예언은 약 40년 뒤인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실제로 성취됩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치열한 전투 끝에 성전을 무너뜨리고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요세푸스라는 유대 역사가에 따르면, 수십만 명이 그 전쟁에서 희생되었고, 예루살렘은 사실상 지도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실제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한 예루살렘에 임한 경고의 열매였습니다.
이 심판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모든 세대와 민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장면을 보며 반드시 묻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예루살렘처럼 붙잡고 있는가?”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과 제도, 전통과 외형적 경건함에 의지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 건물, 재정, 직분, 습관처럼 보이는 것에 안주하고 있진 않습니까?
무너지는 예루살렘을 통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붙드는 것이 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너희가 만든 우상인지 돌아보라.”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이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21:23)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막연한 말이 아닙니다. 구체적이며, 실제적이며, 우리 삶을 흔들 수 있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동시에 도망하라, 산으로 가라, 성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는 복음의 단초입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구원의 통로를 열어두십니다.
목사님, 오늘 우리는 이 본론1을 통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현실에서 시작되며, 우리로 하여금 회개와 신뢰의 자리로 이끌기 위한 주님의 경고다.”
🔵 본론 2: 하늘의 징조들 – 흔들리는 세상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 후, 더 넓은 범위의 말씀으로 나아가십니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눅 21:25)
이 장면은 단지 한 도시의 멸망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 자체가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하늘에 있던 해와 달, 별이 흔들리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불안에 떨며 절망합니다.
바다의 성난 소리는 창세기의 혼돈(chaos)을 떠올리게 하며,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불안을 나타냅니다.
이 징조들은 단지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역사적 징조입니다.
구약에서 별과 하늘은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이 흔들린다는 것은,
인간이 믿어온 질서, 문명, 안전망이 무너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목사님, 우리는 지금도 이런 징조들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전염병, 경제 붕괴, 자연 재해가 끊이지 않습니다.
장년의 삶을 살아오신 성도님들 중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젊었을 땐 그래도 앞이 보였는데, 요즘은 뭘 믿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전환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눅 21:26)
세상은 두려워서 기절하지만, 성도는 다른 반응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주님은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하십니다.
왜입니까?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눅 21:28)
세상은 무너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완성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기엔 종말의 징조가 두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 가운데로 나아가기 직전의 진통과 같은 것입니다.
목사님, 본문을 묵상하며 저는 마치 출애굽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을 떠올렸습니다.
장자를 잃은 애굽 땅에 울부짖음이 가득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 양의 피 아래서 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밤은 애굽에겐 심판의 밤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에겐 해방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도 세상의 징조 속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고개를 드는 사람입니다.
그 징조는 멸망의 신호가 아니라, 속량의 전주곡입니다.
🔵 본론 3: 인자의 오심 – 속량의 날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이어가시며, 이 모든 혼란의 절정에 한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눅 21:27)
이 말씀은 다니엘서 7장 13-14절의 예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이 ‘인자’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난받던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는 영광의 주로 오십니다.
성도에게 이 장면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눅 21:28)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속량”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속량(ἀπολύτρωσις)은 값을 치르고 종을 자유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구원의 완성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바로 그 날, 인자가 오시는 그 날,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자유와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목사님,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린 시절 들었던 귀향 열차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시골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명절 전날 밤 마지막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시던 날,
아이들은 창밖을 내다보며 “언제 오시나” 기다리다가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이는 순간,
뛰어나가며 기쁨으로 문을 열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성도의 재림 신앙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신 주님이,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 날은 세상에는 두려움의 날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약속의 날이며 기쁨의 날입니다.
고개를 들라는 주님의 말씀은 단지 머리를 드는 외적 행동이 아니라,
믿음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라는 영적 명령입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 성도는 위를 본다.”
우리는 뉴스가 아닌, 구름 위에서 오시는 인자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속량의 날입니다.
모든 불의와 눈물이 사라지고, 죄와 고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날.
주님께서 친히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며 맞이해주시는 그 날.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무너지는 예루살렘을 보았고,
흔들리는 세상 한복판에 선 우리의 모습을 확인했으며,
그 끝에서 영광 가운데 오시는 인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모든 말씀의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오지만, 그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속량의 날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상은 점점 더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고개를 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반드시, 영광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멸망의 날과 속량의 날 사이에 서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느냐?”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며 결단합시다.
“주님, 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고개를 들게 하소서.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소망하게 하소서.
그 날까지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