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논쟁(누가복음 20:1-18)
권위 논쟁(누가복음 20:1-18)
🕊 서론
어떤 사랑은 고백만으로 끝납니다. 상대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거절당해도 끝나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종교 지도자들과 권위에 대한 논쟁을 벌이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거절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결국 죽이기까지 한 인간의 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유대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주시는 도전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밀어내고, 그분의 아들을 우리의 삶 밖으로 내쫓으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거절된 사랑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랑은 십자가로 이어지고, 부활로 승리하며, 지금도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십니다. 이 사랑 앞에 우리는 어떤 응답을 해야 할까요?
📖 본론1 – 인간이 거절한 하나님의 권위 (누가복음 2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20:8)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그 권위를 누가 주었느냐?” (1–2절)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신학적 탐구가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 자체를 부정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장면은 단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불신앙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에 본능적으로 반발하는 모습을 대변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선포될 때, 죄인은 그것을 불편해하고 거부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듣기보다, 자기의 권위와 위치를 지키려는 마음이 더 앞섭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내면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요한의 세례에 대해 묻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4절) 그들은 진리보다 체면을 지키는 데 집중합니다. 자신들이 요한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로부터"라 말할 수 없고, 백성이 두려워 "사람으로부터"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는 모호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이 장면은 신앙 없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을 보여줍니다. 진리 앞에서 회개하고 순복하기보다, 자기 계산과 체면에 따라 말과 태도를 조절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의 눈치를 봅니다. 예수님께서 "나도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단호한 심판이자, 자기 마음을 굳게 닫은 자에게는 더 이상 계시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무서운 선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종종 하나님의 권위를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 사회적 판단을 더 신뢰하려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권위는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 권위는 이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입니다.
📖 본론2 – 포도원 농부의 비유: 반복되는 거절과 하나님의 인내 (눅 20:9–15상)
예수님께서는 권위 논쟁을 이어가며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농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의 구속 계획, 그리고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사랑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주는 구속사적 비유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맡기고 떠났습니다. 이 포도원은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사 5:1–7). 농부들은 지도자들, 즉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입니다. 이들은 백성을 말씀으로 돌보고 하나님께 열매를 돌려드려야 할 책임을 가진 자들입니다.
때가 이르자 주인은 열매를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그 종들을 매질하고, 능욕하고, 내쫓습니다(10–12절). 이 반복되는 행동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를 거쳐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반복적으로 거절당하고 박해받았다는 역사적 진실을 고발합니다. 이스라엘은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들의 음성을 외면했고, 오히려 그들을 핍박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잘못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지속적인 반역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농부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마지막으로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13절)
이 말씀은 우리를 감격하게 만듭니다.
주인은 이미 수많은 종들이 상처받고 거절당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자기 아들을 보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사랑, 포기하지 않으시는 은혜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4절)
이 장면은 십자가 사건을 예고하는 구속사의 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죽이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 했습니다.
이 비유는 단지 그 당시 유대 지도자들만을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인생의 주인이 되려는 마음, 예수님을 밀어내고 자신의 유익을 더 중요시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그분의 거룩한 계획 안에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어지고,
거절당한 아들을 통해 오히려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는 은혜로 완성됩니다.
📖 본론3 –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은혜 (눅 20:15하–18)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5절)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습니다. 이 장면은 곧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언하는 결정적 표현입니다. ‘포도원 밖’은 곧 예루살렘 성 밖, 곧 골고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만든 경계 바깥에서,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채 죽임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7절)
이 말씀은 시편 118편 22절을 인용한 것으로, 사람들이 무가치하다고 여긴 돌(예수님)이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핵심 기초가 되셨다는 복음의 선언입니다.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돌을 건물의 가장 중요한 자리,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항상 뒤집힘의 은혜를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아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이스라엘은 꺾였지만,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거절당한 사랑을 통해 멈추지 않는 은혜를 이뤄가셨습니다.
하지만 이 은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8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생명과 심판이 나뉜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깨어지는 자는 다시 새롭게 빚어지지만,
그리스도를 거절한 자는 그 돌에 의해 완전히 심판당합니다.
그리스도는 피할 수 없는 기준이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임하는 결정적인 분기점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그분을 무시한 채, 내 인생의 건축을 스스로 하고 있는가?
복음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이자, 동시에 심각한 도전입니다.
🔚 결론
사랑받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그 거절로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강력하게 드러난 자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 앞에서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이 아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인생의 포도원을 찾아오십니다.
말씀을 통해, 사람을 통해, 성령의 감동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 아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새 생명이 있고,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그 위에 세워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다시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그 거절당한 사랑 앞에 마음을 열고 무릎 꿇을 것인지 말입니다.
깨어진 심령으로 다시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회복시키시고,
우리의 삶을 다시 하나님의 구속사에 참여하는 거룩한 포도원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 앞에,
겸손히 나아가길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