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누가복음 17:20-37)

essay2598 2025. 3. 3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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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누가복음 17:20-37)

 

📝 서론

우리는 살아가면서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 안정된 생활, 건강한 자녀, 평안한 노후…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말을 들으면, 눈에 보일 만큼의 뚜렷한 변화—예를 들면 정치적 해방, 경제적 풍요, 교회의 급성장—같은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시대도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윗의 왕국을 회복시켜 줄 줄 알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은 것도 그런 기대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와 하나님이 말씀하신 나라는 같습니까? 예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 본론1 –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전환시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외적으로, 정치적이고 가시적인 방식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첫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 땅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심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5에서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미 임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고, 그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실재로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본문 21절의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너희 속에(in you)"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너희 가운데(in your midst)"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실체로서 그들 가운데 계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계신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건물이나 국경선이 있는 물리적 나라가 아닙니다.
로마서 14:17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으며, 성령 안에서 임하는 내적인 실제임을 보여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세상 가운데 드러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는 공동체이자, 이미 그 나라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말씀과 성령의 통치를 받으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는 먼 미래의 환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현실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는 자의 삶 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움과 불확실함이 가득한 이 세상 한복판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본론2 – 하나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미 이 땅에 임하였지만, 그것은 완성된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는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또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눅 17:22)

이는 예수님께서 장차 다시 오실 재림의 날,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날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뿌린 것이고, 재림은 그 나라가 열매 맺는 완성의 순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 안에서 ‘이미와 아직’의 긴장 가운데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그날이 어떤 날인지에 대해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눅 17:26, 28)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일상의 평안 속에 갑작스럽게 임한 심판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며, 사고팔고, 심고건축하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은 경고 없이 임했고, 그때에는 돌이킬 시간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4)

이 표현은 갑작스럽고 명백하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종말의 날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조용히 은밀히 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알게 될 분명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날은 동시에 심판의 날이자 구원의 날입니다.
누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는 날이며,
또 누구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맞이하는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임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종말론은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진보나 노력으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완성될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인간의 열심으로 앞당길 수도 없고, 반대로 그 날을 늦출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서, 이 땅의 삶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신앙의 선진들처럼, 우리는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히 11:16).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우리의 희망이며, 신자의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날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삶에 갇혀 살아온 자들에게는 슬픔과 후회의 날이 될 것입니다.

 

📖 본론3 –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삶은 준비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임할 날, 곧 인자의 날에 대한 비유를 이어가시며 중요한 교훈을 주십니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눅 17:31)

이 말씀은 종말의 날이 갑작스럽게 임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즉각적인 반응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날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날은 미리 챙기거나 뒤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자만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한 구절을 덧붙이십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눅 17:32)

이 한 마디는 단호한 경고입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 마음은 아직 세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본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자의 결단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저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눅 17:33)

여기서 ‘목숨’은 단순한 생명을 넘어, 자기 중심적인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자기 삶을 보존하고자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그 삶은 세상적 기준으로는 손해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보면 참된 승리입니다.

본문은 마지막으로 심판의 장면을 묘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눅 17:34)

이 말씀은 겉으로는 같아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도 영적인 분별과 구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외적 신앙의 형식이 아니라 참된 믿음과 기다림의 삶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삶은 단순히 ‘그 날이 오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매일을 깨어 준비하는 삶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처녀의 비유처럼, 슬기로운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말씀과 기도로 삶을 세워가며, 매일을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자의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가치에 묶이지 않습니다.
재물보다 복음을, 안전보다 순종을, 성공보다 거룩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삶은 고되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 결론 –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이미 임하셨고, 지금도 성령 안에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날, 즉 인자의 날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우리의 오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단지 영적인 위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선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속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의 가치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지키고,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날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오늘을 그 날처럼 살아야 합니다.
준비된 자로, 깨어 있는 자로, 성령 충만한 자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립시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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