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설교(매일성경)_새벽 말씀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0:25-42)

essay2598 2025. 3. 1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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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0:25-42)

 

✨ 서론 ✨

여러분, 오늘날 ‘이웃’이란 단어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요? 예전에는 이웃 하면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들을 떠올렸지만, 요즘은 이웃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서로에게 무관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이웃’이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단순한 이웃 개념을 뛰어넘어 "누가 참된 이웃이 될 것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진정한 이웃’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나와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웃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 봅시다.

✨ 본론: "참된 이웃, 누가 될 것인가?" ✨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의 질문을 통해 참된 이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등장하는 세 부류의 사람을 통해 우리가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제사장과 레위인: 지나쳐 버린 사람들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정해질까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 자신의 사역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 혹시 강도가 아직 주변에 있을까 봐 두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이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이웃’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혹시 우리도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고도 모른 척 지나치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2. 사마리아인: 멈춰 서서 손 내민 사람

그러나 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을 때는 달랐습니다. 그는 멈춰 서서 그를 불쌍히 여겼고, 직접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으며, 추가 비용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 사마리아인을 참된 이웃의 본보기로 세우셨습니다. 참된 이웃은 신분이나 조건이 아니라, 행동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통해 참된 이웃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멈춰 서서 관심을 가지는 것 – 바쁘다고 지나치지 않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는 것 – 사랑과 긍휼의 마음
직접 행동하는 것 –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3. 우리는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혹시 바쁘다는 이유로, 내 일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혹은 두렵다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권면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반드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강한 도전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이웃인가?”

  •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는가?
  • 하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참된 이웃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참된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묻지만, 예수님은 ‘네가 누군가의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이웃은 신분이나 조건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 속에서 결정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힘겨워하는 이웃들
  • 외로움과 상처로 인해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

이들에게 다가가고, 손을 내밀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 바로 참된 이웃의 모습입니다.

🏆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

1️⃣ 무관심을 버리고 주변을 돌아보자.
→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라 생각하자.
2️⃣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자.
→ 작은 친절, 위로의 말, 기도의 손길이 큰 변화를 만든다.
3️⃣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자.
→ 내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낼 때,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참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바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을 외면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도 참된 이웃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손과 발을 사용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론 ✨

여러분, 요즘 시대에 ‘이웃’이라는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내 가족, 내 일, 내 문제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길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아도 모른 척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찾아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5)

율법 교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외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에 율법교사는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대답을 듣고 칭찬하시며 "네가 옳게 대답하였다. 그것을 행하라. 그리면 네가 살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기뿐이 좋아, 예수님께 더 좋게 보이려고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눅 10:29)

그의 질문 속에는 "이웃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합니까?"라는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선을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개념’에 대한 논쟁을 하지 않으시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네가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참된 이웃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도 율법 교사처럼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고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참된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 소주제 1: 강도 만난 사람 (우리는 연약한 존재다) ✨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강도 만난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눅 10:3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강도 만난 사람의 상태

이 사람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옷까지 벗겨졌으며, 심하게 맞아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무력하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약 27km 정도 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구불구불한 산길로 강도들이 자주 출몰하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가 강도를 만난 것은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2. 우리 주변에도 강도 만난 자들이 있다

강도 만난 사람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도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 병으로 고생하는 이웃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
마음이 병든 사람들 – 외로움과 상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영적으로 방황하는 사람들 – 하나님을 떠나 길을 잃은 영혼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나는 이들을 외면하고 지나치지는 않는가?”

강도 만난 자는 우리 자신일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의 누군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참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 소주제 2: 제사장과 레위인 (무관심과 종교적 형식주의) ✨

강도 만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을 때, 두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 10:31-32)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고, 일반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했습니다.

1. 제사장과 레위인은 왜 그냥 지나갔을까요?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한 이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적인 이유 – 율법에 따르면 시체나 피를 만지면 부정해질 수 있었습니다(레 21:1). 혹시 강도 만난 사람이 이미 죽은 것이라면, 자신이 부정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쁜 일정 – 제사장은 예배를 드려야 하고, 레위인은 성전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중요한 종교적 의무가 있었기에 그들의 우선순위에서 이 강도 만난 사람은 밀려났습니다.

두려움과 자기 보호 – 강도들이 여전히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도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으니, 안전을 위해 그냥 지나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 우리도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모른 척하지 않는가?”
  • “나의 신앙이 종교적 형식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 “교회에서는 열심히 봉사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이웃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종종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 교회에서 봉사는 하지만,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는 무관심할 때
👉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기도할게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도와주지는 않을 때
👉 "나도 바쁜데, 누가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외면할 때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은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이 실천되는 신앙입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하나님은 종교적 의식보다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더 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그로므로 우리의 신앙이 사랑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면서도, 교회가 실제로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신앙은 무엇입니까?
📖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막 12:31)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신앙이 말과 형식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멈춰 서서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될 것인가?
다음 소주제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 소주제 3: 선한 사마리아인 (참된 이웃의 모습) ✨

강도 만난 사람을 본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멈춰 섰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눅 10:33)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을 등장시키신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부정한 민족, 원수 같은 존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이야말로 참된 이웃의 본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습니까?

1. 멈춰 서서 긍휼히 여겼다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눅 10:33)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멈춰 섰습니다. 그는 단순히 동정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긍휼한 마음으로 행동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 누군가가 아픔을 겪고 있을 때, 외면하고 지나치지는 않는가?
  •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정말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진정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직접 행동으로 도왔다

📖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눅 10:34)

사마리아인은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 자신의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았으며
  • 비용까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기도할게요”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직접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기회를 찾기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기 (관심, 위로, 물질적 도움 등)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섬기기

예수님은 단순히 "불쌍하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직접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면, 이웃을 향한 사랑도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3. 사랑의 실천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 10:35)

사마리아인은 단순히 도와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책임지고 끝까지 돌보았습니다.
그가 여관 주인에게 돈을 맡기며 “비용이 더 들면 내가 갚겠다”라고 말한 것은, 사랑이 희생을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을 도울余裕(여유)가 있을까?"
  • "내가 손해 볼 수도 있는데 굳이 나서야 할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은 희생을 각오한 사랑입니다.
📖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롬 12:9-10)

진정한 사랑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희생할 때 완성됩니다.

4. 예수님의 질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비유의 끝에서 예수님은 율법 교사에게 물으십니다.

📖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6)
율법 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눅 10:37)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눅 10:37)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좋은 이야기를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 나는 누군가의 참된 이웃이 되고 있는가?
👉 내가 강도 만난 자를 보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나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할 수 있는가?

진정한 이웃은 "내게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손을 내밀어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참된 이웃이 되기를 바랍니다.

✨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참된 이웃, 누가 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율법 교사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고 질문했지만, 예수님은 “네가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우리도 강도 만난 사람처럼 연약한 존재다.

우리는 죄와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상처받고 쓰러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2️⃣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지지 말라.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형식에 머무르면 참된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3️⃣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라.

참된 이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 불쌍히 여기는 마음
  • 직접 도우려는 결단
  • 희생을 감수하는 사랑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이웃의 모습입니다.

🙌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예수님은 단순히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직접 실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지나쳐 갈 것인가?
👉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멈춰 서서 손을 내밀 것인가?

우리가 진정한 이웃이 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참된 이웃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우리의 이웃에게도 그 사랑을 흘려보내게 하소서. 우리의 신앙이 말과 형식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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