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16 아브라함의 믿음(롬4:16-25)

essay2598 2024. 11. 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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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16 아브라함의 믿음(4:16-25)

 

(4:16, 개정)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4:17, 개정)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4:18, 개정)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4:19, 개정)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20, 개정)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개정)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4:22, 개정)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4:23, 개정)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4:24, 개정)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4:25, 개정)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의 믿음이 건강한 믿음이 되고, 성숙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본질은 롬4:18에 나오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대로가 믿음의 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 것, 신학적 용어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납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맑은 물처럼 받아서, 믿음을 흔드는, 의심을 씻어 내버려야 합니다(4:14; 6:35).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의심을 씻어 내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쩌면 뼈를 깎는 고통과 지독한 외로움을 현실에서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찌르고, 쪼개야 합니다.

(4:12, 개정)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찌르고, 쪼개기 시작할 때,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에 파고들기 시작할 때,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5:10-11절을 봅시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시고 여러분의 가슴이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본질

 

그렇다면 은혜를 성립시키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19절을 보십시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여기서 죽은 것 같다는 말은 헬라어로는 이미 죽었다의 완료형으로, 이미 동작이 끝난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이미 죽었음을 알았고, 사라의 태가 이미 죽었음을 알았습니다.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는 말씀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생산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에는 단 1%로의 현실적 가능성 조차도 사라진 상태가 되었다. 이미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은 생산능력을 잃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의 별같이, 땅의 티끌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수많은 후손의 약속과 나라와 민족과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100% 이루어 질 수 없는 불가능한 황상입니다.

 

여기에서 갈등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갈등과 불신앙을 구분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자 하는 유혹은 죄가 아닙니다. 죄의 유혹은 예수님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고,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갈등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갈등조차도 믿음으로 이겨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 갈등하고, 흔들리는 모습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우리가 로마서 이 부분만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대답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읽어보면,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실망보다는 용기와 믿음을 더 많이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성정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얻기까지 여러차례 하나님이여, 왜 저에게는 후손을 주시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계획은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이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15:4). 말씀하시면서 하늘의 별을 보이시며,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약속의 말씀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쯤 되었을 때(16:3), 또 다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사라가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후처로 취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쩌면, 이스마엘이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을 하고 이스마엘을 사랑을 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99세 때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고치시고,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 그리고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외라말씀하십니다(17:5-6).

아브라함은 , 후손에 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씨에서 왕들이 나오고, 많은 민족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자 메시아가나올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또 땅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살 때, 한 평의 땅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사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지쳐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현실입니다. 그 속에 아픔도, 고통도, 눈물도 있습니다. 때로는 광야와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큰 바위가 나를 짓누르고, 사방이 막혀있고, 폭풍 속에서 파선할 것 같은 인생의 위기가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수많은 문제의 갈등 속에서도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능력의 주님과 함께 생명과 영광을 얻기 위해 좁은 길, 고난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런 갈등을 겪으면서 어떤 이들은 절망의 구렁에 빠져버리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서 주님!” 부르면서 약속의 말씀을 다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스바여러분, 어떠한 현실에서도 주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꺾일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믿습니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역설

 

아브라함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가리켜 믿음의 역설이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역설은 1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라는 말은 소망을 거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원문을 직역하면, “소망을 거스르는 소망 가운데서 그가 믿었다가 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당시의 상황이 매우 절망적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인간의 처지와 상황을 바라볼 때 그에게는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15:5절에 나오는 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게 많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다시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된 말씀을 믿음으로 붙드는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갈등과 절망으로 인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모든 소망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기 시작할 때, 절망에서, 끊어진 소망에서, 더이상 기대할 수 없는 소망에서, 믿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소망 안으로 다시, 들어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 역설은 19-20절입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오히려 강해졌습니다. 인간적으로 봤을 때는 낙심하고, 연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강해졌습니다.

18절과 더불어 19절은 아브라함의 환경을 초월한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약하여지지란 단어는 약하다, 힘이없다입니다. 일차적으로 이 단어는 육체의 약함, 즉 병이 든 상태를 나타내지만, 본문에서는 믿음에 있어서 약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직면하고 깊이 숙고해본 현실은 자기 자신과 아내 사라가 늙어 생산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바울은 이미 죽었고, 그리고 죽은 상태임을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 즉 자식을 주어 후사를 잇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롬4:17절에서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의지하는 믿음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이라는 장치로 여과시켜서 받아들이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즉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이것이 심히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아무런 흔들림 없이 기꺼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이 가져다주는 희망으로 상식이 주는 절망과 갈등을 극복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이들은 현실이나 상식이 주는 절망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이 살아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5:35). 그러나 주님은 드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5:36)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 주님의 말씀을 신뢰한 야이로는 자신의 죽은 딸을 다시 얻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5:41-43).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나 약속들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지 말고, 믿음으로 가감없이 수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셋째는 20-21절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의심스러운 환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에 마음으로 다투지 않았습니다’,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과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하여 그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 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역설입니다. 현실을 보면 의심할 수밖에 없고, 포기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받고, 확실한 믿음의 신뢰를 가졌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바라보고, 의지할 때, 이루어 지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믿음의 갈등이 생기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끝난 인생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소망이 끊어진 상황이라 할지라도, 약속된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주님을 더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적용

 

이것을 적용하는 말씀이 24-25절입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한 칭의는 그와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이 그로부터 의롭다여김을 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나님을 믿는 신약의 모든 성도들 역시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를 얻지 못할 사람이 한 사람 없고(16:31), 믿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를 얻을 사람 또한 없습니다(4:12). 이것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지를 거부하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 하나님의 은혜에 참예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칭의를 위해서 계산해 넣으신 유일한 것은 믿음 뿐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나의 죄로 인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나의 의를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있었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저와 여러분을 의롭다 여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은 절대 번복할 수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고, 십자가에서 피와 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시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습니다. 절대 번복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히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 문제가 그렇게 확실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가 이토록 악독한 죄를 지은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피가 아니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죄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모든 고난과 고통을 참으시면서까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4:25, 개정)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것이 우리가 죄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천지가 없어져도, 나의 죄 문제가 해결된 것과 내가 의롭다 선언함을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범죄하여 잘못된 자리에 떨어졌을 때, 사단은 나를 향하여 너 같은 게 성도냐, 집사냐, 교사냐, 목사냐?” 우리를 정죄할지라도, 그래 나는 그렇다, 나는 죄인이다. 나에게 대단한 믿음도 없다. 성도의 자격과 조건을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의 주님이 부활하셨다.” 나는 날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다.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나를 의롭다고 여겨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믿는다.” 선포하시고, 믿음으로 일어나길 바랍니다.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선포가 있을 때, 삶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확신으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자랑함으로, 점점 믿음이 성숙해 져가는 미스바가 되길 바랍니다.

 


나눔/ 예수 늘 함께하시네(고단한 인생 길)

 

1.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믿음의 본질을 롬4:18절에 언급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2. 4:19절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믿음이 약해질 만한 이유가 무엇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3.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역설의 믿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엇이 아브라함의 역설의 믿음인가?

 

18

 

- 19-20(삼상30:6 참고)

20-21

 

 

4.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의 비결이 무엇입니까?(4:20-21)

 

5. 4:24-25절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선언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의롭게된 우리의 증거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근거해서 믿음으로 선포하시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믿음의 확신으로 삶의 변화를 통해서 성숙되는 미스바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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