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여호와의 의로우심과 회개의 부름
(예레미야애가 1:12-22)
서론: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인정할 수 있을까?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오랜 기간 우상 숭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일삼았고, 그 결과로 심판이 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며 자신과 백성의 죄를 돌아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본문 구조 분석
- 12-15절: 예루살렘의 황폐함과 고난의 고백.
- 16-19절: 죄의 결과로 인한 슬픔과 하나님의 심판 인정.
- 20-22절: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회복을 소망함.
원문 분석: 중요한 단어와 구절
- 예레미야애가 1:18 -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צַדִּיק הוּא יְהוָה)
- ‘צַדִּיק’(찻디크 tsaddiq): ‘의로운, 정당한’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본성과 심판의 정당성을 강조합니다.
- 해석: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 백성의 죄 때문에 의롭고 정당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1:20)
- 원문에서 ‘보소서’(רָאָה)는 절박한 외침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주목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표현입니다.
- 라아(raah)는 하나님께서 고난 속에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1:22)
- '악'(רַע, 라 ra): 라(형용사)는 라아(H7489)에서 유래했으며, '나쁜, 해로운 bad, 악한 evil'을 의미한다.
도덕적 부패와 죄를 의미하며, 하나님은 결코 죄를 간과하지 않으심을 나타냅니다.
- '악'(רַע, 라 ra): 라(형용사)는 라아(H7489)에서 유래했으며, '나쁜, 해로운 bad, 악한 evil'을 의미한다.
배경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된 후(주전 586년) 예언자 예레미야가 도성의 폐허와 슬픔을 노래한 시입니다. 이 책은 고통과 절망을 노래하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신뢰하며 회복의 소망을 놓지 않습니다. 본문의 상황은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여 멸망을 초래했으며, 남겨진 자들이 슬픔과 회개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설교 핵심 메시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고 회개로 나아가라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하나님의 불의가 아니라 백성의 죄에 대한 심판임을 강조합니다. 이 고난은 회개를 위한 기회이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대지 1: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라 (1:18)
"(애 1: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백성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함을 인정합니다. 그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고 말할 때,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분의 공의에 따른 것임을 의미합니다. 백성은 오랜 기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로 바벨론의 침략과 예루살렘의 멸망이 일어난 것입니다.
1. 심판의 원인은 백성의 죄악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었지만, 끊임없이 그분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우상 숭배와 부패는 백성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고,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 경고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여러 차례 회개를 외쳤으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예루살렘은 멸망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삶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2. 고난의 순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라
고난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탓하고 상황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자신과 백성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합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상황을 남 탓하거나 하나님의 불공평함을 말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정당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신앙의 본을 보여줍니다.
3. 회개를 통해 회복의 길이 열린다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는 순간이 회복의 시작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심판을 넘어 회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 적용: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 회개합시다. 죄를 인정할 때 하나님은 회복의 문을 여십니다.
대지 2: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1:20)
"(애 1: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예레미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백성은 고통과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1. 고통 속에 기도의 중요성
고난의 순간에 우리는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오히려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단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분께 소망을 두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십니다.
2.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경험하는 변화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을 고백하면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신앙의 표현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절망은 소망으로 변하고, 혼란은 평안으로 바뀝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3. 응답을 기다리는 신앙의 인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해서 즉각적인 응답이 오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예상하는 시간과 방식과 다를 수 있지만, 그분의 응답은 언제나 선합니다.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움 속에서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 적용: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우리의 고통을 솔직하게 고백합시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대지 3: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말고 회개하라 (1:22)
"(애 1:22)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거할 때,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임합니다. 그러나 심판은 단순한 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과정입니다. 심판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제공합니다.
1. 회개 없는 삶은 멸망을 초래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삶은 멸망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2. 회개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
예레미야는 심판이 끝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용서하시고 회복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3. 매일의 회개가 필요하다
회개는 단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날마다 죄를 짓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그분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 적용: 죄를 숨기지 말고 하나님께 고백하며 회개의 삶을 삽시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회개를 통해 새롭게 시작하는 길을 선택합시다.
결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예레미야애가 1장 18-22절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회개의 필요성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분은 우리의 고통을 들으시고 회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회개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말씀 적용 3가지
-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신뢰하십시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믿고 의지합시다.
- 고난 중에 기도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의 고통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간구하십시오.
- 매일 회개의 삶을 사십시오: 작은 죄라도 하나님 앞에 즉시 회개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갑시다.
기도제목 3가지
-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 고난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게 하소서.
-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소서.
오늘의 적용과 기도
-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신뢰하겠습니다.
-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 날마다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의로우신 하나님, 저희가 삶 속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신뢰하게 하소서. 저희가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었을 때,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께 소망을 두며 기도하게 도우시고, 죄를 깨닫는 즉시 주님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41020 여호와의 의로우시다(예레미야애가 1:12-22) 청년부 예배
(애 1:12)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애 1:13)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애 1:14)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애 1:15) 주께서 내 영토 안 나의 모든 용사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청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딸 유다를 내 주께서 술틀에 밟으셨도다
(애 1:16)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 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애 1:17)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방에 있는 자들에게 명령하여 야곱의 대적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불결한 자가 되었도다
(애 1: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애 1:19) 내가 내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들의 목숨을 회복시킬 그들의 양식을 구하다가 성 가운데에서 기절하였도다
(애 1: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애 1:21) 그들이 내가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애 1:22)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사랑하는 약땅 미스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진지한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그것은 바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할 수 있는가?”입니다.
여러분은 고통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좋으신 분이십니다” 고백하십니까? 아니면 불평과 원망의 말을 많이 하십니까?
여기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란? 하나님께서 항상 선하고 공정하게 행동하시며, 그분의 모든 결정과 행위가 정의롭고 옳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그분의 본성과 분리할 수 없는 속성으로 가르치며,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핵심 요소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본질: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서 그분의 모든 행동은 정의롭고, 불의함이 없습니다. 신명기 32:4 말씀을 보면,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의로우신 분이시며, 그분의 행위와 결정은 그 완전한 의로움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공평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신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의로우신 하나님과 죄: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죄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며, 죄에 대해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성품을 보여줍니다. 죄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로마서 1:18). 하지만 동시에 그분은 사랑이 많으셔서, 죄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제공하십니다(로마서 3:21-26). 여기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랑이 함께 드러납니다.
셋째, 의로우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또한 그분의 구원 계획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때도 의로우심을 손상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죄에 대한 공의로운 형벌을 만족시키시고, 동시에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고린도후서 5:21). 이로써 하나님은 의로우시면서도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넷째, 개혁주의 시각: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그분의 주권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위에 권한을 가지시며, 그분의 판단과 섭리는 언제나 정의롭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강조하며, 그분의 공의와 주권에 대해 신뢰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종종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 일하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로마서 8:28).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그분이 모든 면에서 공정하고, 거룩하며, 올바르다는 성품입니다. 그분의 의로우심은 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을 나타내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구속의 은혜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어렵고 힘든 고난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매우 어려운 질문이지만, 성경과 신학적 원리를 통해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은 하나님이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합니다(신명기 32:4, 시편 145:17).
(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시 145: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요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이 한 맹인의 고통을, 누군가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로잡으시며, 그 고통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고통이 단순히 죄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께서 더 큰 선을 이루기 위해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욥기의 욥도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심하며 고뇌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우주를 주관하시며 그분의 지혜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함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욥기 42:3-6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욥 42:3)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욥 42:4)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욥 42:5)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욥 42:6)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분의 선하신 뜻과 목적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고, 그분의 주권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실력”입니다. 따라합시다. “믿음의 실력을 기릅시다.”
또한 이 주제를 개혁신학의 전통을 다루며,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에베소서 1:11),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일하신다고 말합니다(로마서 8:28).
따라합시다. “고통조차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 믿음이 개혁신앙의 핵심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도 이 주제에 대해 자주 다루며, 특히 그의 저서 “고통에 답하다”(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_고통과 슬픔을 넘어서)에서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며, 그 고통을 통해 우리를 더 깊은 신앙으로 이끄시는지를 깊이 설명합니다. 켈러 목사님은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다루는 데 있어 기독교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며, 그 고통이 단순히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첫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고통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일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허용하실 때, 그것을 통해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이끄십니다. 로마서 8:28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을 통해, 고통도 결국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둘째, 고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고통은 우리가 세상의 것들에 의존하던 것을 끊고, 진정한 소망과 위안을 오직 하나님께 찾게 합니다. 고통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도구이며, 우리의 신앙을 더 깊고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욱 깊은 연합을 이루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이 깊어집니다.
셋째, 팀 켈러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강조하며, 하나님이 우리 고통을 이해하시고 동참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고, 그를 통해 우리의 고통을 친히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고통받으시는 분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고통을 구속의 이야기로 변환시켜, 그 고통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하신다고 설명합니다.
넷째, 팀 켈러 목사님은 기독교의 고통에 대한 독특한 소망을 강조합니다. 고통은 결국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는 이 땅의 고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회복을 경험할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에게 위로와 인내의 근거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고통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 안에서 모든 고통을 없애시겠다는 약속을 통해, 우리는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소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의로우심을 붙잡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신앙의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고통이 단순히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 깊은 관계로 이끄시기 위한 중요한 도구임을 강조합니다. 고통을 통해 우리는 성숙해지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며, 그리스도와 더욱 닮아가기를 믿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적 토대 위에서 우리의 믿음을 굳게 세움으로, 하나님의 더 큰 계획과 섭리를 신뢰하며,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예레미야, 열왕기서의 말씀을 새벽마다 읽고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배경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믿고 따라야 할 백성들이 오랜 기간 우상 숭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순종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심판이 임했고, 예레미야는 나라가 멸망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슬픔과 아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탄식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원망과 불평이 아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며 자신과 백성의 죄를 돌아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본문 구조 분석
12-15절: 예루살렘의 황폐함과 고난을 고백합니다.
16-19절: 죄의 결과로 인한 슬픔과 하나님의 심판 임을 인정합니다.
20-22절: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회복을 소망합니다.
대지 1: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항상 인정합니다(1:18)
"(애 1: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백성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함을 인정합니다. 예레미야가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라고 말할 때,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의하지 않으며, 공의로우신 심판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1. 이러한 고백과 함께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이었지만, 끊임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우상 숭배와 부패는 백성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고,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여러 차례 회개를 외쳤으나, 백성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예루살렘은 멸망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삶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2.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의 순간에, 원망이 아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의로우시도다”는 히브리어로 ‘차디크’인데 “의로움, 올바른, 공정한, 공의로운”을 의미합니다.
고난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탓하고, 상황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유다 백성들처럼 자신이 행한, 죄악 된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교만하고, 오만한 생활이 반복되면, ‘의로우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은 부당합니다. 불합리합니다, 억울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불공평함을 우리의 입술로 말하기보다, 먼저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과 백성의 죄를 고백했으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3. 예레미야가 자신과 백성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회개를 통해 회복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는 순간이 회복의 시작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 심판을 넘어 회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대지 2: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1:20).
"(애 1: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예레미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백성은 고통과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기도합니다.
약땅 미스바 여러분,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시 20: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9: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시 86: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왜 중요한지 이유를 발견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우리를 능력과 권능의 팔로 들어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순간에 우리는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오히려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단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분께 소망을 두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는 분이 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고난의 순간에 상황과 문제를 보고 낙심하며, 불평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응답받는 믿음의 청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해서 즉각적인 응답이 오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며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예상하는 시간과 방식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듯이 기억하고 믿음으로 붙잡아야 할 신앙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항상 선하시고, 의로우십니다.“ 믿으십니까?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고난 속에서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믿음의 청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적용 3가지
-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 고난 중에도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 작은 죄라도 하나님 앞에 즉시 회개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
의로우신 하나님, 저희가 삶 속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신뢰하게 하소서. 저희가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었을 때,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께 소망을 두며 기도하게 도우시고, 죄를 깨닫는 즉시 주님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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